ACCOMPLISHMENT

1. 나눔의 집의 도움으로 취직하여 후원자가 된 음씨 이야기

어느 날 나눔의 집 박성원 목사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빙햄턴 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30대 청년 음씨였다. 음씨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무작정 뉴욕에 왔는데 당장 머물 곳이 없어서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을 당한 상태였다. 급하게 인터넷으로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을 찾다가 우연히 나눔의 집을 알게 되어서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청년을 만나러 갔을 때 여기저기를 얼마나 돌아다녔던지 무거운 이민 가방의 바퀴가 모두 빠져있는 상태였다. 청년을 데려다가 우선 따뜻한 밥을 먹이고, 나눔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음씨는 너무나 고마워하며 그렇게 몇 주를 나눔의 집에 머물렀다. 그곳에 있으면서 계속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았지만 쉽게 구해지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다른 사람이 연봉이 적다며 거절한 직장을 본인이 도전해보겠다며 이력서를 제출하였다. 음씨는 재능도 많고 똑똑한 청년이었는데 무척 겸손하였다. 그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원하는 연봉을 말하라는 질문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이야기했던 그는 생각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대학을 다녔던 시절, 늘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려고 애썼던 그였기에 주님께서 귀한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는 낯선 뉴욕에 와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귀한 도움을 주신 나눔의 집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막상 도움을 청해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음 씨는 현재 새로운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나눔의 집에 전화를 걸어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감사의 안부인사도 전했다. 또한 나눔의 집에 머물 때 이야기했던대로 정성껏 후원금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는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노숙인들에게 거처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재활에 성공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 나눔의 집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알기에 앞으로도 힘이 닿는대로 돕고 싶습니다.” 라고 말이다.

2. 교회 행사마다 묵묵히 섬기던 손야곱씨, 나눔의 집에 머물다 주님곁으로…

2006년 뉴욕 한인봉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여러 곳에서 묵묵히 봉사하던 손야곱 씨, 그의 마지막 생전 모습은 매우 좋지 못했다. 기자가 나눔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얕은 잠에 빠져있었다. 박성원 목사(나눔의 집 대표)는 도통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그가 오랜만에 잠들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깊이 잠들지 못했는지 작은 소리에 금방 눈을 떴다. 몇 마디를 나누고자 찾아갔지만 손야곱씨는 그마저도 힘들어했다. 창백한 안색으로 인사만 몇 마디 나눴을 뿐 대화가 힘들만큼 지쳐있는 모습이 무척 안타까웠다.

손야곱씨는 교계의 많은 분들이 아시는 대로 모든 교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홍보 포스터를 부치고 행사에 필요한 준비를 하며 묵묵히 섬겨왔던 분이다. 성실하게 교회를 돕고 받는 사례비로 간신히 생활을 꾸려오던 그는, 점점 일거리가 부족하여 수입이 없어지자 렌트비를 충당하지 못하여 집에서 쫓겨나게 되는 처지가 되었다. 갈 곳이 없어 방황하던 그가 처음 나눔의 집을 찾았을 때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어서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지만 차츰 입맛이 없다며 잘 먹지 못하고 간혹 심한 어지럼증도 호소했다. 그러다가 점점 상태가 악화되어 2015년 2월 병원을 찾게 되었고 특별한 이상소견은 없었으나 깊은 우울증으로 인한 영양실조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그 해 4월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그는 생전에 매우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도 없었다고 한다. 가족도 없이 오랫동안 혼자 살면서 내면의 상처와 건강의 악화로 인해 우울증 증세를 나타내기도 했었다. 교회에서조차 홀로 지내다시피 하여 그의 사정을 제대로 아는 사랆도 없었고 도움의 손길도 쉽지 않았었다. 말수가 점점 줄고 더욱 내성적이 되는 탓에 활기찬 식사시간에도 적극적으로 식사에 동참하지 못해서 나눔의 집 박성원 목사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했었던 것이다.

갈 곳이 없던 손 씨가 삶의 막바지에 몰렸을 때 나눔의 집에 들어와서 사랑을 받고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그러나 나눔의 집 박성원 목사는 생전에 손 씨가 체중이 계속 줄어서 매우 말랐었기 때문에 딱딱한 침대에 몸을 누이기도 힘들어 했다며, 조금 더 편안한 환경에서 지내게 해주지 못한 게 못내 마음이 아프다고 회고했다. 조금 더 편안한 침대에서 쉴 수 있는 것,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어떤 누군가에겐 절실한 소원인 것이다.

3. Mr. 우

한국에서 대기업 직장생활하다가, 1982년에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미국에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맨하탄 브로드웨이에서 무역(도매상)을 10년 하다가 크게 부도가 나서 잠적하였습니다. 3년간 잠적 후 심기일전하여 보조간호사 공부를 하고 라이선스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16년간 근무하였습니다. 16년간 근무하며 모은 돈을 펀드매니저라고 했던 사기꾼에게 모두 날렸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허리디스크가 재발하여 1년간 병원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에 조기은퇴하였습니다. 삶의 어깨가 너무 무겁고 그 동안의 삶이 너무 허무해 삶을 포기하려고 할 때 ‘나눔의 집’을 알게 되어 들어와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나눔의 집’에 들어와서 가장 좋았던 것은 단체로 합숙하는 생활을 처음 해봤는데 재미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해지는 느낌도 있어서 좋습니다. 또한 ‘나눔의 집’ 식구들이 전부 깊은 상처가 있는 분들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착하고 이해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간혹 나태해질 수 있는데, 하루 네 번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4. K 자매

‘나눔의 집’에는 남편과 1남 3년와 2002년 10월에 미국에 살기 위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안 좋아지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일념만으로 살며 우울증으로 고생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기도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영적생활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의 일방적 이혼요구로 인해 가족과 헤어지게 되었고 친구의 도움으로 ‘나눔의 집’에 왔습니다.

결혼생활 27년 만에 가족과 처음으로 헤어진 저는 죽고 싶은 생각에 시달릴 때에 ‘나눔의 집’에 왔으니 서먹함은 있었지만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도록 이끄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가족에 대한 애착과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나눔의 집’에서의 예배와 이 곳에서 만난 형제와 자매들의 애정은 제가 또 다른 세상을 보게 해주었고 영혼을 사랑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였다. 

5. 마약중독자였던 윤태석 씨, 재활에 성공하여 중소기업 회사원이 되다.

한국에서 의경 1기생으로 제대를 하고 일찌감치 뉴욕으로 이민을 왔던 윤태석씨는 부푼 꿈을 안고 열심히 일했지만 계속되는 사업실패와 심장이상으로 인한 건강의 악화로 노숙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2012년 태풍 샌디가 뉴욕을 강타했을 때 우연히 나눔의 집에 들어왔지만 목적 없는 삶은 항상 그를 괴롭혔다. 뿐만 아니라 그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그가 오래된 마약중독자였다는 사실이다. 오래 전 마약거래로 체포되어 복역한 이후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결국 마약에 손을 댄 것이었다. 그의 중독은 가장 먼저 가정을 파괴하였고 무엇보다 자신의 몸과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는 무서운 것이었다.

나눔의 집에 들어와서 심장수술을 여러번 받으면서도 마약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그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말씀으로 치유되고 어려운 중에도 일어서려는 동료들을 보면서 조금씩 주님을 향한 삶의 목적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15년 2월, 하나님의 기적 같은 은혜로 드디어 오래된 마약중독의 늪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자립을 위해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은 윤 씨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 새롭게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생겨났다. 한국행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눔의 집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2015년 5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 택시운전으로 생계를 꾸리던 그는 현재 중소기업에 취직하여 평범한 회사원으로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 그가 나눔의 집 박성원 목사에게 보내온 글의 일부이다.

“목사님, 미국을 떠난 지도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외롭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나눔의 집을 떠올립니다. 그곳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지금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왔습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윤 씨는 모든 희망을 잃고 마약중독자로 살아가던 자신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주었던 나눔의 집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며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희망 뿐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나눔의 집에서 얻은 사랑과 용기와 희망만이 그와 늘 함께 할 것이다.


6. Patrick Lee 

이곳 나눔 하우스에서 제가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받아 다시 용기와 힘을 얻어 이렇게 다시 사회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막막한 상황에서도 용기와 물질적 도움을 받아 생사를 넘나들던 고난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은총과 이곳 나눔 하우스에 계신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다시 삶의 의욕이 생기게 되어 너무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다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에 반드시 이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베풀어 주신 은혜 목사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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